- 책 소 개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와 이대학보사가 이화여자대학교 학부 재학생을 대상으로 공동 주관하는 ‘이화글빛문학상’이 올해로 제10회를 맞았다. 올해의 당선작은 국제사무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조혜린 씨의『덧니』이다. 이 작품은 출판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송연우가 프랑스에서 온 앙리와 함께 삽화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밝혀지는 비밀을 다룬다.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1인칭 독백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인물의 입장을 3인칭 대화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사건을 펼쳐내는 서사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는 서른 살 비정규직 송연우를 통해 현실 타협적 연애와 결혼, 이분법적 분류와 획일성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 가정 폭력과 성정체성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을 인물 간의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버무려 공감을 얻을 수 있게 그려낸다. 특히 ‘이쪽’과 ‘저쪽’ 중 어디에도 확고하게 소속되지 못하고 부유하듯 살아가던 두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수수께끼적 구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문장력은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몰입하게 한다. 작품은 사회의 정규적인 트랙에서 벗어난, ‘덧니’와도 같은 두 사람 사이의 연애소설로 읽을 수도, 일련의 경험을 통해 한 여성이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비주류와 소수자를 ‘너’가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보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에 대한 작가의 희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제10회 이화글빛문학상 심사평
올해의 당선작으로 결정된 『덧니』는 투고작 중에서 가장 소설적인 구성과 주제가 돋보였다. 1인칭 독백의 세계가 아닌 3인칭 대화 중심의 세계관을 담고 있었으며, 내면을 사건에 담아내는 서사적 능력이 가장 탁월했다. 작가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라는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가정 폭력이나 왕따, 현실 타협적인 연애 문제와 잘 결합해서 일상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덧니’처럼 ‘구별’ 혹은 ‘차별’되는 특성을 지닌 소수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들의 관계 변화를 밝히기 위한 설정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수수께끼적 구성이나 완숙한 문장을 통해 끝까지 읽히는 힘을 제공한다.
작품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통찰하게 하는 성장소설이자,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려주는 연애소설이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예외적 결단이 타자에 대한 배려임을 일깨우는 실존소설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의식의 깊이와 주제의 입체성을 담보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 정진하여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_심사위원 정미경(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김미현(이화여대 국어국문학 전공 교수, 문학평론가)
줄거리 및 본문 발췌
- 줄거리
올해 서른 살이 된 송연우는 작은 출판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어려서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꾸역꾸역 ‘견뎌내는’ 것에 익숙한 그녀는 회사에서도, 연애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매사에 수동적이고 존재감 없이 살아간다. 대학에서 동아리 선배로 만나 오래 사귄 진철은 나쁘진 않지만 연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성을 투영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다. 진철과의 결혼을 앞두고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확신이 없던 그녀에게 프랑스에서 온 작가 앙리의 신간 『이끼의 숲』 삽화를 작업할 기회가 주어지고, 연우는 진철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일을 맡기로 한다. 작업 때문에 앙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연우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가 쓴 『이끼의 숲』에는 유독 아팠던 그녀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들이 많았고, 연우는 오랫동안 봉인해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자 혼란스럽다. 상대에게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내보이며 두 사람은 불가항력적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어느 비오는 날 앙리의 작업실에서 연우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입을 맞춘다. 그러나 앙리는 두 사람의 상처가 너무 닮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이후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듯 불완전했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드디어 모든 비밀이 밝혀지게 된 순간, 연우는 공항으로 달려가는 길에 앙리가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게 되는데...- 책 속에서
“왜, 그런 기분 안 들어요? 여기선 항상 이진법에 갇혀 있는 기분. 만들어진 답에 나를 맞추고, 몸집보다 작은 틀에 자신을 구겨 넣는.”
“거기는 다른가요?”
“…… 뭐, 다르다기보다는 다르길 바랐죠.”
_ p.57
“여주인공 말이야. 절벽까지 가서는 왜 살인마 손에 죽었을까.”
“리안이요?”
“음, 절벽이면 그냥 뛰어내리는 편이 나으려나.”
“……?”
“연우 씨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앞에는 오빠를 죽인 살인마가 있고, 뒤에는 몇백 미터 낭떠러지야. 뛰어내릴 건가, 아님 죽임을 당할 건가?”
나는 두 가지 답안 모두 못마땅했기에 머뭇거렸다. 그의 표정에서 피할 수 없다는 강압적인 사인이 읽혔다. 잠시 고민하던 내가 평소처럼 답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둘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러고는 현실적인 고려 끝에 덧붙였다.
“이왕이면 좀 덜 고통스러운 쪽을 선택하는 게…….”
앙리는 말을 바로 끊더니 혼을 내듯 혀를 내둘렀다.
“에이, 뭘 생각해. 도망가야지, 그럴 땐.”
_pp.83-84
앙리는 잠자코 듣는가 싶더니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나는 솔직하게 말한 걸 바로 후회했다. 뱉고 보니 내 자신이 더욱 별 볼일 없게 느껴졌다. 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참 맥없는 이유였다. 나의 말 속 그 어디에도 진철에 대한 사랑 같은 건 담겨 있지 않았다. 차라리 ‘오래 만난 정 때문에요’, 라거나 ‘그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가 나은 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탓할 거면 탓하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앙리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은 입원한 환자보다도 창백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연우 씨,”
짧은 순간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과 비애감이 스쳤다.
“살면서 그냥 견뎌지는 건, 없어요…….”
_ pp.123-124“정말, 실수였어요?”
그는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서 부탁하듯이 이야기했다.
“말해줄까요? 연우 씨는 매사에 솔직하지 않죠. 견디긴 뭘 견뎌. 그래서 지금, 본인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나? 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해요? 세상이 무서워서?”
“……네.”
나는 곪은 속내를 힘을 주어 터뜨려냈다.
“무서워요. 부모님, 동생, 친구, 동료들. 다 무서워. 그 사람들이, 세상이,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겁이 나, 난.”
“그래서, 그게 본인 감정보다도 중요해? 그래?”
“…….”
“연우 씨, 그냥 견뎌지는 건 없어요. 왜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 그 사람들이, 당신 인생까지 대신 살아주진 않잖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앙리는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의 손은 이전의 녀석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이번에는 그쪽 잘못 아니에요. 나 때문에 그래……”
“……아직, 첫사랑 못 잊었어요?”
그가 물기 어린 내 뺨을 다정하게 소매로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내 어깨 위에 걸쳤다.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겉옷이었다.
“알고 있죠? 우리 둘이 많이 닮은 거. 상처가 맞닿으면 아플 거 같단 생각 들었어. 내가 괜찮을 자신이 없어.”
_ pp.203-204
병원에서는 발치를 잘 권하지 않는다. 부러 뽑아낸 이는 성날 수 있단다. 의사는 다시 묻는다. 정말 하실 겁니까. 사이에 레진을 박으셔야 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이게 자꾸만 제 존재를 확인하려 드는데, 입에 끼인 ‘덫’처럼 거슬려서요. 의사는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간 언저리까지 마스크를 올렸다. 마취로 인해 감각이 없음에도 눈물이 나온다. 아. 이렇게 성년이 되는가보다. 가지런하고 고른 치열을 얻은 대신, 남들이 일컫는 ‘자연스러움’을 잃었다.
_ p.230
- 저자 소개
-
지은이 : 조혜린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국제사무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 차 례
-
0001. 제대로 된 일
0010. 안녕, 히아신스
0011. 내 낡은 서랍 속의 가을
0100. 이끼의 숲
0101. 살면서 견뎌지는 것들
0110.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
0111. 비 오는 날의 성장통
1000. 리안을 떠나보내며
에필로그: 그 남자의 일기장
제10회 이화글빛문학상 심사평 238
작가의 말 241